좋은글

14) 류시화 시 모음

소향 강은혜 2007. 5. 21. 00:15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무는
나무의 시
사과나무
자작나무
첫사랑
질경이
소금별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물안개
비로 만든 집
목련
안개 속에 숨다
두 사람의 아침
나 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저편언덕
세 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의 기억이 흐려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소금인형
사람들은 저마다 내게 안부를 묻는다
가을 유서
그토록 많은 비가
자살
나무
여행자를 위한 서시
새와 나무
누구든 떠나갈 때는
민들레
들풀
길 가는 자의 노래
여우사이
여섯 줄의 시
우리는 한 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다
빈둥지
뮤직박스
눈물
많은 눈을 나는 보았네
거리에서
그건 바람이 아니야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는
나무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눈 위에 쓴 시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전화를 걸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행복한 물고기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잔 없이 건네지는 술
겨울 날의 동화
벌레의 별
제비꽃
언덕
비밀
십일월, 다섯 줄의 시
젊은 시인의 초상
바람 부는 날의 풀
옛날의 정원

길 위에서의 생각
붉은 잎
시월 새벽
하얀 것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구름은 비를 데리고
그건 바람이 아니야
산안개
별에 못을 박다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
신비의 꽃을 나는 꺽었다
패랭이꽃

시인 소개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를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
나무의 시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
사과나무


아주 가끔은
사과나무 아래 서있고 싶다
살아온 날과 살아간 날들이
두팔 벌리고 서 있는
사과나무 밭
태양이 눈부신 날이어도 좋고
눈내리는 그 저녁이어도 좋으리
아주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어도 좋고
사과나무처럼 늙은 뒤라도 좋으리
가끔은 그렇게
사과나무 아래 서 있고 싶다

~~~~~~~~~~~~~~~~~~~~~~~~~~~~~

자작나무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다
사라은 침묵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면
이미 내 어린 시절은 끝나고 없다

이제 내 귀에 시의
마지막 연이 들린다 내 말은
나에게 되돌아 울려오지 않고 내 혀는
구제받지 못했다

~~~~~~~~~~~~~~~~~~~~~~~~~~~~~~~~~

첫사랑


이마에 난 흉터에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질경이


그것은 갑자기 뿌리를 내렸다, 뽑아낼 새도 없이
슬픔은
질경이와도 같은 것
아무도 몰래 영토를 넓혀
다른 식물의 감정들까지 건드린다

어떤 사람은 질경이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서둘러 뽑아 버릴수록 좋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머지않아
질경이가
인생의 정원을 망가뜨린다고

그러나 아무도 질경이를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한때 나는 삶에서
슬픔에 의지한 적이 있었다
여름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슬픔만이 있었을 뿐

질경이의 이마 위로
여름의 태양이 지나간다
질경이는 내게
단호한 눈짓으로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타인으로부터
얼마만큼 거리를 두라고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의 그토록 무덥고 긴 날에

~~~~~~~~~~~~~~~~~~~~~~~~~~~~~~~~~~~~~~~~~~~~~~~~~~~~~~~~~~~~~~~~~~~

소금별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 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 치면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 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여기 죽은 나무가 있다
누군가 소리쳐서 뒤돌아보니
그곳에 내가 쓰러져 있었다
물을 주면 살아날지도 몰라
누군가 다가가서 흔들어 본다
죽은 나무는 기척이 없다
나무는 자실을 꿈꾸지 않는다
그냥 잎을 버리고
죽을 뿐이다

~~~~~~~~~~~~~~~~~~~~~~~~~~~~~~~~~~~~~~~~~~~~~~~~~~~~~~~~~~~~~~~~~~~~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
비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안개로 만든 집
구월의 오솔길로 만든 집
구름비나무로 만든 집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세상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의 새가 세상의 지붕 위를 날고
비를 내리는 오솔길이
비의 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비로 만든 집에서
나는 살았네
비의 새가 저의 부리로
비를 물어 나르는 곳
세상 어디로도 갈 곳이 없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비를 맞았네

비로 만든 집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지
비를 내리는 나무
비를 내리는 길
비를 내리는 염소들

~~~~~~~~~~~~~~~~~~~~~~~~~~~~~~~~~~~~~~~~~~~~~~~~~~~~~~~~~~~~~~~~~~

목련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 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

두 사람의 아침


나무들 위에 아직 안개와
떠나지 않은 날개들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 오솔길 위로
염소와 구름들이 걸어 왔지만
어떤 시간이 되었지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여기 이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한때 한없이 투명하던 것들
기억 저편에 모여 지금
어떤 둥근 세계를 이루고 잇는 것들
그리고 한때 우리가
빛의 기둥들 사이에서 두 팔로
껴안던 것들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 우리가 물가에서
귀 기울여 주고받던 말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새와 안개가 떠나간
숲에서 나는 걷는다 걸어가면서
내안에 일어나는 옛날의 불꽃을
본다 그 둘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숲의 끝에 이르러
나는 뒤돌아 본다.

~~~~~~~~~~~~~~~~~~~~~~~~~~~~~~~~~~~~~~~~~~~~~~~~~~~~~~~~~~~~~~~~~~~

나 비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저편언덕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

세 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물이 소리내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숲을 떠나지 못했네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 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고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사랑의 기억이 흐려진다.


시월의 빛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진다

한때는 모든것이
여기에 있었다.그렇다.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때 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여기,거기,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봐
이 모든 것들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

소금인형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

사람들은 저마다 내게 안부를 묻는다


사막은 얼마나 생각할 것이 많으면 그렇게
한 생애를 길게 잡았을까

소금은 얼마나 인생의 짠 맛을 보았으면 그렇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을까

얼음은 얼마나 고뇌에 차면 그렇게
마음을 차갑게 닫고 있을까

우물은 얼마나 후회가 깊으면 그렇게
마음 깊이 눈물을 감추고 있을까

심해어는 또 얼마나 마음을 강하게 먹었으면 그렇게
심해의 압력과 어둠을 견디고 있을까

별은 또 얼마나 말 못할 과거가 많으면 그렇게
먼 곳까지 달아나 있을까

~~~~~~~~~~~~~~~~~~~~~~~~~~~~~~~~~~~~~~~~~~~~~~~~~~~~~~~~~~~~~~~~~~~

가을 유서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지켜서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


*월간<시사랑.9월호>에서~~

~~~~~~~~~~~~~~~~~~~~~~~~~~~~~~~~~~~~~~~~~~~~~~~~~~~~~~~~~~~~~~~~~~~

그토록 많은 비가


1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어났구나

2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떡갈나무 아래 선 채로 몸이 뜨거워졌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 더 멀리 흘러갔는가
한번은 내 삶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큰 떡갈나무가
밤에 비를 맞으며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떡갈나무는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가

3

길을 잃을 때면
달팽이의 뿔이 길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빗방울이
때로는 나무 위의 낯선 새가
모두가 스승이었다
달팽이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다녀오고
그곳에선 거지와 도둑과 수도승들이
또 내게 길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병들어 갠지스 강가에 쓰러졌을 때
뱀 부리는 마술사가 내게 독을 먹여
삶이 한 폭의 환상임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영원히 나는 입맛을 잃었다

4

그때 어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속을 날아갔었다
밤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눕자
새의 날개가 내 집 지붕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

자살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나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여행자를 위한 서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아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

새와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

민들레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위를 떠 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

들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

여우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


여섯 줄의 시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왔던 말을
말하렴, 네 숨속에 숨은 지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

우리는 한 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다


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께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어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 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 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을 저버렸기에.....

~~~~~~~~~~~~~~~~~~~~~~~~~~~~~~~~~~~~~~~~~~~~~~~~~~~~~~~~~~~~~~~~~~~~

빈둥지



고요한 숲
나뭇가지 위에 둥지가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가시나무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낮에 잎사귀가 넓은 식물들 곁을 지나
아무도 몰래 나무 밑으로 접근했다

새는 그때가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언젠가 입은 상처로
나무둥치에 생긴 흉터자국에 한쪽 발을 걸치고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채
한낮의 고요 속에
마치 금지된 열매를 따려는 사람처럼
손을 뻗어 둥지 밑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한쪽 발로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나뭇가지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둥지가 있는 곳까지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빼고 재빨리
둥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빈 둥지였다

~~~~~~~~~~~~~~~~~~~~~~~~~~~~~~~~~~~~~~~~~~~~~~~~~~~~~~~~~~~~~~~~~~~

뮤직박스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그대로
나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

눈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

그럴 수 없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는
그저 자취없음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을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서
나더러 옷을 벗으라 하고
내 머리를 바치라 한다
나더러 나를 버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내게 물이 되라하나
나는 불로서 타오르려 한다
그는 내게 미소가 되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내 안에 큰 울음이 넘쳐난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 하나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다

~~~~~~~~~~~~~~~~~~~~~~~~~~~~~~~~~~~~~~~~~~~~~~~~~~~~~~~~~~~~~~~~~~~

많은 눈을 나는 보았네



눈물로 가득한 눈
꽃잎처럼 눈물을 뚝뚝 떨구는 눈
이루지 못한 욕망에 한숨짓는 눈
눈웃음짓는 눈
많은 눈을 나는 보았다
절망한 자의 눈
어린아이의 눈
세상을 초월한 눈
그리고 흙으로 채워진 죽은 자의 눈을 나는 보았다
장님의 움직이지 않는 눈도 보았다
짐승의 눈과 곤충의 눈과
내 눈을 들여다보는 어떤 눈
어느 곳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미친 자의 눈도 나는 보았다
사랑할 것이 있는 눈과
사랑을 찾아 헤매는 눈
어떤 눈은 인생을 이미 다 살았고
어떤 눈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
모든 것을 나는 보았다.

~~~~~~~~~~~~~~~~~~~~~~~~~~~~~~~~~~~~~~~~~~~~~~~~~~~~~~~~~~~~~~~~~~~

거리에서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불붙은 옥수수밭처럼
내 마음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입 속에 혀처럼 가두고
끝내 하지 않는 말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바람이 아니야

~~~~~~~~~~~~~~~~~~~~~~~~~~~~~~~~~~~~~~~~~~~~~~~~~~~~~~~~~~~~~~~~~~~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뒤에 숨은 붉은 열매처럼
여기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지켜보는 것이 있다
서서히 얼어붙은 수면에 시선을 박은 채
돌 틈에 숨어 내다보는 물고기의 눈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건방진 새처럼
무엇인가 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그것
눈밖에 없는 그것이
밤에 별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큰곰별자리 두 눈에 박혀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때로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눈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내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을까
여기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지고 난 붉은 열매처럼
차가운 공기를 떨게 하면서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떨게 하는 것이 있다

~~~~~~~~~~~~~~~~~~~~~~~~~~~~~~~~~~~~~~~~~~~~~~~~~~~~~~~~~~~~~~~~~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집뒤에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여기 죽은 나무가 있다
누군가 소리쳐서 뒤돌아보니
그곳에 내가 쓰러져 있었다
물을 주면 살아날지도 몰라
누군가 다가가서 흔들어 본다
죽은 나무는 기척이 없다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그냥 잎을 버리고
죽을 뿐이다

~~~~~~~~~~~~~~~~~~~~~~~~~~~~~~~~~~~~~~~~~~~~~~~~~~~~~~~~~~~~~~~~~~~

눈 위에 쓴 시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눈이 녹아 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 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집을 떠나
방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에 서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책들은 죽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입은 옷은 색깔도 없는 옷이라서
비를 맞아도
더이상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참 기쁘고
무엇이 참 슬픈가
나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었다

~~~~~~~~~~~~~~~~~~~~~~~~~~~~~~~~~~~~~~~~~~~~~~~~~~~~~~~~~~~~~~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에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

전화를 걸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새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이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으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요구 할 수 없는 삶
그렇다,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 편성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레 길게 드리어진다

~~~~~~~~~~~~~~~~~~~~~~~~~~~~~~~~~~~~~~~~~~~~~~~~~~~~~~~~~~~~~~~~~

행복한 물고기




나는 내 안에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안의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나는 물을 마신다.
내 안의 물고기를 위해.


내가 춤을 추면 물고기도 춤을 춘다.
내가 슬플 때 물고기는
돌 틈에 숨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나를 응시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것.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물고기를 행복하게 하는 일.


나는 내 안에 행복한
한 마리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달새의 머리는
온통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비새의 생각은
언제쯤
다음 번 비가
올까 하는 것.

아~~
그대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을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 할수 없어 울적 할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 거릴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것은
인간뿐
삶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보라, 삶을
굴뚝새가 사라진 삶을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
오직 인간만이 남으리라
대지 위에
입을 벌리고 잠든 인간만이

~~~~~~~~~~~~~~~~~~~~~~~~~~~~~~~~~~

잔 없이 건네지는 술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

겨울 날의 동화


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여덟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 살이었다 버릇 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 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

~~~~~~~~~~~~~~~~~~~~~~~~~~~~~~~~~~~~

벌레의 별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

제비꽃


수레를 타고 가는 신부
옷자락을 잡아 당겼지
풀어지는 사랑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로 가서
신부가 되리

~~~~~~~~~~~~~~~~~~~~~~~~~~~~~~~~~~~~~~~~~~~~~

언덕


뒷짐을 지고
한 짐 그리움을 지고
올라가는
길, 햇빛은 가장 먼 곳에서
죽어 있는 것들 흔들며
내려오고

점점 작아지는 사람
하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비밀


신비의 서를 나는 읽었네
글자없이 종이 없이 쓰여진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저 티벳 성자들의 낯선 세계속으로
나는 가 보았다
흰 구름의 길을 헤치고
밀라레빠와 대머리 독수리들의 대화속으로
그리고 절대의 음악을 나는 들었다
연주하는 이도 악기도 없이 울려 퍼지는
신비 시인 까비르의 시에 나는 취했다
나는 술을 마실 줄 모르지만
그가 주는 술은 마실 수 있다
술잔도 없이 건네지는 그 술을
입 대지도 않고 나는 마신다
이 술 취한 자의 말을 들으라
삶은 누구도 알수 없는 것
다만 덧 없는 시간의 화살속에서
그 화살 쏘는 자를 나는 본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십일월, 다섯 줄의 시


차가운 별
차갑고 멀어지는 별들
점점이 박힌 짐승의 눈들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는 옛날의 애인
아, 나는 십일월에 생을 마치고 싶었다

~~~~~~~~~~~~~~~~~~~~~~~~~~~~~~~~~~~~~~

젊은 시인의 초상


아침에 할 일이 없는 날은
나도 쓸쓸하더라 할 일 없이
마음 속에 이런 저런 마음만 물밀어 모이고
일어서다 앉다 다시 누워 보는 내 머리맡에
푸른 고양이 한 마리 와서 머물더라
그런 날 아침이면 나도
그 고양이 푸른 몸 안으로
숨고 싶더라

밤에는 또 기다려도 쉬이 잠이 오지 않더라
어두운 지붕과 지붕을 지나
고양이는 가고 오지 않고
누울 자리에 누워 있으면 낮게
누가 내 이름을 부르더라

~~~~~~~~~~~~~~~~~~~~~~~~~~~~~~~~~~~~~~~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 부는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 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

옛날의 정원


여기 이 숲에 오면 둥근 나무들과 황금의 벌레들이 있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잊혀졌던 예날의 물꽃이 있다
새들이 부리로 그 불꽃을 물어 날아 사방에서 빛이 터진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숲의 오솔길로 즐겁게 달려갔다
누군가 오래 전에 이 길에서 했던 말들의
메아리가 내 뒤를 따라왔으며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삶의 고독함도 청춘의 방항도 그 뒷날의 일이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나는 숲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갑자기 비구름이 숲을 뒤덮고 모든 것들이
그 오솔길에서 덧없이 져버렸다
숲에서 돌아 나오면서 그 예날의 불꽃을 나는 잊었다

~~~~~~~~~~~~~~~~~~~~~~~~~~~~~~~~~~~~~~~~~~~~~~~~~~~~




바다에 섬이 있다
섬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고
그 바다로 나가면 다시 새로운 섬
섬 안의 섬 그 안의 더 많은 바다 그리고 더 많은 섬들
그 중심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들면서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또 꿈꾸었다
꿈 속의 꿈 그리고 그안의 더 많은 잠 더 많은
꿈들

~~~~~~~~~~~~~~~~~~~~~~~~~~~~~~~~~~~~~~~~~~~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 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 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간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 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붉은 잎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 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 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직여 가고
또 갑자기 멈춘다
여기 이 구름들과 끝이 없는 넓은 강물들
어떤 섬세하고 불타는 삶을 나는 가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었다, 그렇다,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하챦았던가, 여기 이 붉은 잎, 붉은 잎들
허공에 떠 가는 더 많은 붉은 잎들
바람도 자고 물도 맑은 날에
나의 외로움이 구름들을 끌어당기는 곳
그것들은 멀리 있다, 더 멀리에
그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그것들을 겨울하늘 위에 소용돌이치게 하고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 위로 끌어내린다

~~~~~~~~~~~~~~~~~~~~~~~~~~~~~~~~~~~~~~~~~~

시월 새벽


1
시월이 왔다
그리고 새벽이 문지방을 넘어와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만진다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 것이냐고
개똥쥐빠귀들이 나무를 흔든다

2
시월이 왔다
여러 해만에
평온한 느낌 같은 것이 안개처럼 감싼다
산 모퉁이에선 인부들이 새 무덤을 파고
죽은 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3
나는 누구인가
저 서늘한 그늘속에서
어린 동물의 눈처럼 나를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 그것을 따라가 볼까

4
또다시 시월이 왔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침묵이
눈을 감으면 밝아지는
빛이 여기에 있다

5
잎사귀들은 흙 위에 얼굴을 묻고
이슬 얹혀 팽팽해진 거미줄들
한때는 냉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눈물이 많아졌다
이슬얹힌 거미줄처럼
내 온 존재에 눈물이 가득 걸렸던 적이 있었다

6
시월 새벽, 새 한 마리
가시 덤불에 떨어져 죽다
어떤 새는
죽을 때 가시 덤불에 몸을 던져
마지막 울음을 토해내고 죽는 다지만
이 이름없는 새는 죽으면서
무슨 울음을 울었을까

7
시월이 왔다
구름들은 빨리 지나가고
곤충들에게는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리라
곧 모든 것이 얼고
나는 얼음에 갇힌 불꽃을 보리라

~~~~~~~~~~~~~~~~~~~~~~~~~~~~~~~~~~

하얀 것들


날개
물 위에 뜬 빛
어린시절의 기억
외로운 영혼
죽음 뒤에 나타나는 빛의 터널
자작나무의 흰 껍질
강의 마른 입술
오래된 상처

사막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얗고 긴 생을 견디는 걸까

여기 하얀 것들이
내 곁에 있다

오래된 상처
강의 마른 입술
자작나무의 흰 껍질
죽음 뒤에 나타나는 빛의 터널
외로운 영혼
어린시절의 기억
물 위에 뜬 빛
날개

~~~~~~~~~~~~~~~~~~~~~~~~~~~~~~

그대와 함께 있으면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내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그대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느땐
아무말 하지 않아도
마치 내 마음을 털어 놓은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항상 나를 이해하는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기분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사소한 일 조차 속일 필요없고
잘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세상을 두려워 하지않는
자신감을 갖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그대에게 의지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대는 내게
특별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

구름은 비를 데리고


1
바람은 물을 데라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새는 벌레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구름은 또 비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나는 삶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2
달팽이는 저의 집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백조는 언 호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어린 바닷게는 또 바다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아, 나는 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불붙은 옥수수밭처럼
내 마음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가 입 속에 혀처럼 가두고
끝내 하지 않는 말
그건 바람이 아니야

내 몸속에 들어 있는 혼
가볍긴 해도 그건 바람이 아니야

~~~~~~~~~~~~~~~~~~~~~~~~~~~~~~~~~~

산안개


나에게 길고 긴 머리카락이 있다면 저 산안개처럼 넉넉히 풀어 헤쳐
당신을 감싸리라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별에 못을 박다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

작은 대나무다리 위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길 없는
인적 드문 오솔길에 놓인
작은 대나무다리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이제는 한 사람의 무게마저 지탱하기 힘든
내가 자주 가는 산책길
작은 대나무다리

내가 가졌던 모든 것과
가지려고 했던 모든 것 사이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언제나 말없이 놓여 있는
작은 대나무다리

눈바람에 시달리고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자신의 무게마저 견디기 힘든
하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나의 작은 대나무다리

그 위에 서서 내려다보면
아래는 아득한 절벽

~~~~~~~~~~~~~~~~~~~~~~~~~~~~~~~~~

신비의 꽃을 나는 꺽었다


세상의 정원으로 나는 걸어들어갔다
정원 한가운데 둥근
화원이 있고 그 중심에는
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그 꽃은 마치 빛과 같아서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나는 둘레에 핀 꽃들을 지나
중심에 있는
그 꽃을 향해 나아갔다

한낮이었다, 그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누구의 화원인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그것은
나를 향해 저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듯했다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부셔 하며
신비의 꽃을 꺾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 전체가 빛을 잃고
페허로 변하는 것을

둘레의 꽃들은 생기를 잃은 채 쓰러지고
내 손에 들려진 신비의 꽃은
아주 평범한
시든 꽃에 지나지 않았다

~~~~~~~~~~~~~~~~~~~~~~~~~~~~~~~~~~~~

패랭이꽃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 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류시화 시인 소개


본명 : 안재찬
1959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80~1982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1983~1990 작품활동 중단,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

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작업을 하다.
<성자가된 청소부>,<장자, 도를 말하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등 40여권 번역.

1988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들 체험
<성자가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남
1989 두 차례에 걸쳐 인도여행.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 생활.
1988~1991 가타 명상센터 생활.
1991 명상구도 에세이 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1992~1993 제주도 생활.
1994 태국, 스리랑카, 인도, 네팔, 히말라야 여행.
1996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여행기<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1998 잠언시집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엮음
1999 자연에 대한 잠언시집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엮음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바람 >  (0) 2007.05.26
15) 김지하 시 모음  (0) 2007.05.21
13) 도종환 시 모음  (0) 2007.05.21
12) 서정주 시 모음  (0) 2007.05.21
11) 노천명  (0) 200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