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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병화 시 모음

소향 강은혜 2007. 5. 21. 00:09
혼자라는 거
봄비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다
낙엽
내가 시를 쓰는 건
사랑,혹은 그리움
사랑

깊은 밤에
들꽃처럼
서산나귀의 독백
남남.26
이승에 단 램프
칼칼한 동반
주점
소라의 초상화
먼 그 약속
안개로 가는 길
어느 생존
시간이 몰린 길목에서
나의 노래
사랑의 계절
바다에서의 엽서
구름
가난은
평화
헤어진다는 것은
가을
지루함
개울
하루만의 위안
꽃을 버릴 때처럼
소망
고요한 승리
소년에게
청춘의 기를 세워라
남 남10
밤의 이야기. 20
공존의 이유. 12
어느 해결
지금 내 마음은 (병상에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추억
소라
이승의 짐을 덜어내며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먼 곳에서
노을

묵은 사진첩을
남남
초상
이렇게 될줄 알면서도
낮달
공존의 이유
나 돌아간 흔적
고독과 그리움
곁에 없어도
늘, 혹은 때때로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
산책
사랑의 노숙
회상
잎 떨어진 나무와 같이
나무의 철학

숨어서 우는 노래
밤의 이야기

시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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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거



밤 2시경
잠이 깨서 불을 켜면
온 세상 보이는 거, 들리는 거
나 혼자다


이렇게 철저하게 갇혀 있을 수가 있을까


첩첩한 어둠의 바닥


조물주는 마지막에 있어
누구에게나
이렇게 잔인한 거


사랑하는 사람아
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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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온종일 책상에 앉아, 창 밖으로 멀리
비 내리는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노라면
문득, 거기 떠오르는 당신 생각
희미해져 가는 얼굴
그래,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실로 먼 옛날 같기만 합니다
전설의 시대 같은
까마득한 먼 시간들
멀리 사라져 가기만 하는 시간들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그 속에, 당신과 나, 두 점
날이 갈수록 작아져만 갑니다


이런 아픔, 저런 아픔
아픔속에서도 거듭 아픔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거
이 세상에 왜, 왔는지?
큰 벌을 받고 있는 거지요


꿈이 있어도 꿈대로 살 수 없는
엇갈리는 이 이승
작은 행복이 있어도 오래 간직할 수 없는
무상한 이 이승의 세계
둥우리를 틀 수 없는 자리
실로 어디로 가는 건가


오늘따라 멍하니 창 밖으로
비 내리는 바다를
온종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왈칵, 다가서는 당신의 얼굴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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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을 하며 산다
나를 버리면 산다


사라마은 누구나 스스로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줄에 매여
스스로의 운명을 살다가
스스로의 사그라진 운명 끝에서


그 멍에를 벗고
홀 홀
또다른 곳으로 떠나는 거지만


이 떠남
이 작별


가까운 거리에서
너와 나


하루를 너를 생각하며
열 흘을 너를 생각하며
한해를 너를 생각하며
시시각각을 너를 생각하며


소리없이 소리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하며 산다
멍, 나를 버리면 산다


아, 이 적막
너는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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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먼 곳에 있는 사람아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아


바다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지며 깨지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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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당싱 생각만 했지요

당신께만 할 이야기가 많았지요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지요

초록색 몸차림을 하고 단장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당신 생각만 했지요

어느날 당신이 내 그늘 아래 쉬었을 때

그때 내 마지막 그 말을 당신에게 주는 걸 그랬어요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아주 잊어버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 생각만 했어요

당신께만 할 말이 많았어요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도 먼 이 자리에서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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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쓰는 건



내가 시를 쓰는 건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나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를 쓰고 그만큼
둘을 쓰고 그만큼
셋을 쓰고 그만큼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에게 편질 쓰는 건
언젠가 돌아올 너와 나의 이별
그것을 위해서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너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버리기엔 너무나 공허한 세상
소리없이 떠나기엔 너무나 쓸쓸한 우리
그냥 작별하기엔 너무나 깊은 인연


내가 시를 쓰는 건
하나 하나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잊기 위해서다


그와 같이
내가 네게 편질 쓰는 건
머지않아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 이별
그걸 위하여


하나 하나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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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그리움



너와 나는
일 밀리미터의 수억분지 일로 좁힌 거리에 있어도
그 수천억 배 되는 거리 밖에
떨어져 있는 생각


그리하여 그 떨어져 있는 거리 밖에서
사랑, 혹은 그리워하는 정을 타고난 죄로
나날을, 스스로의 우리 안에서, 허공에
생명을 한잎, 한잎, 날리고 있는 거다


가까울수록 짙은
외로운 안개
무욕한 고독


아, 너와 나의 거리는
일밀리미터의 수억 분지 일의 거리이지만
그 수천억 배의 거리 밖에 떨어져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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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시간을 탈출하는 방법을
너만이 알고 있다


시간을 탈출하는 길을
너만이 알고 있다


탈출 불가능한 이 시간속에서
너만이 나를
탈출시킬 수 있는 비밀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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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 자리에서 좋은 거다
그만큼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좋은 거다
지금 이곳에서
널 생각하고 있는 거리만큼
머리 속에서
넌 그 자리에서 좋은 거다


때론 연하게, 때론 짙게
아롱거리는 안개
밋밋한 자리 감돌며
밤낮을 나보다 한발 앞자리
허허
떠 있는 그 [있음]
넌 그 자리에서 좋은 거다
그만큼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좋은 거다
지금 이곳에서
널 생각하고 있는 거리만큼
충만히 머리속에서
넌 그 거리에서 좋은 거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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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깊은 밤에 잠이 깨면
무심코 생각나는 그 사람
그분은 지름 어떻게 지낼까


고마운 사람아


캄캄한 밤에 잠이 깨면
무심코 그리워지는 그 사람
그분은 지름 어떻게 지낼까


아직은 같이
이 이승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같이는 할 수 없는 한 자리


아, 고독한 사랑아


바람이 불고, 여기저기
세월이 날이는 이 가을, 깊은 밤
언제 이 한마디 말을 전하지


아직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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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들을 걸으며
무심코 지나치는 들꽃처럼
삼삼히 살아갈 수는 없을까


너와 내가 서로 같이 사랑하던 것들도
미워하던 것들도
작게 피어난 들꽃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
삼삼히 흔들릴 수는 없을까


눈에 보이는 거, 지나가면 그뿐
정들었던 사람아, 헤어짐을 아파하지 말자


들꽃처럼, 들꽃처럼, 실로 들꽃처럼
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
아무것도 없었던 거처럼
삼삼히, 그저 삼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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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나귀의 獨白



얼마나 나는 넨게
적응하려 했을까
긴 세월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골몰하면서
얼마나 나는 네게 적응하려 했을까


비굴일 만큼
창피일 만큼
굴욕일 만큼
참으며, 견디며, 온힘 다하여
그 욕설을 풀며, 삭이며
얼마나 나는
상처진 가슴을 살아 왔을까
먼 먼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태어나올 때
그것이 내게 주어진 약속인 양
생각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그 생애를 살며
아, 얼마나 나는
네게 적응하려 했을까


단 한번이라도
널 풀어놓고
날 풀어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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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 26



버릴 거 버리며 왔습니다
버려선 안 될 거까지 버리며 왔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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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 단 램프



나의 목숨은 이승에 단 램프
아직은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남아
너를 볼 수가 있다


불빛이 밝은 만큼 뚜렷이
불빛이 강한 만큼 따뜻이
불빛이 퍼진 만큼 넓게
어둠을 헤치며


아직은 어머님이 주신 기름이 남아
멀리서나마, 이렇게 까마득히 멀리서나마
그냥 너를 저리도록 그리워할 수가 있다


간단없는 거센 바람 속에
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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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한 동반



좀 가라앉을 만하면
다시 불어닥치는 칼칼한 바람
한세월을 뜸할 사이없이
계속, 이렇게
모질게 가시길 바라는 것이 잘못이다.


뜬구름처럼 해와 달이 지나가고
밤이면 아름다운 별이 솟는
엄청난 이 천지에서
머지않아 어디론지 사라져 갈
미세한 생명하나
가난한 품에 품고
풀을 수 없는 이 바람의 둥우리에서
오욕의 목숨을 쪼아가며
머지 않은 그날을 기다리는 이 불면


참으로 어이없는 세월
어이없이 살아 온 거다
가라앉을 만하면
다시 불어닥치는 어이없는 바람
약속된 내 이 장소
칼칼한 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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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쓰기 싫은
그 날이 있고부터
이 거리의 회화를 나는 잊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그러한 수속조차 이미 나에겐 권태스러워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산다는 것이 권태스러운 일이 아니다
수속을 해야 할 내가 있어
그 많은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글 한 자 꼼짝하기 싫어
눈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아버지가 된 그 일이
마침내 어쩔 수 없는 내 여생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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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초상화



당신네들이나
영악하게 잘 살으시지요
나야 나대로히
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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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그 약속



그때 그 약속이
이렇게 빗나가고, 늦어버렸습니다.


이승에서 가장 귀한 나의 말들로
가득히 담으려 했는데
이렇게 초라한 바구니로 되어버렸습니다.


내 온 생애를 다 드린다 한들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무나 오래 떨어져 있는 자리
이러다가 영 사라질 자리


그저 그렇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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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로 가는 길

-경인 하이웨이에서



안개로 가는 사람
안개에서 오는 사람
인간의 목소리 잠적한
이 새벽
이 적막
휙휙
곧은 속도로 달리는 생명
창밖은
마냥 안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긴 내 이 인생은 무엇이었던가
지금 말할 수 없는 이 해답
아직 안개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던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길로 왔을까


피하며, 피하며
비켜서 온 자리
사방이 내 것이 아닌 자리
빈 소유에 떠서


안개로 가는 길
안개에서 오는 길
휙 휙
곧은 속도로 엇갈리는 생명
창밖은
마냥 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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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생존



바람에 취해서 어설풀이
눈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놓이지 않는 풍경 하두 많아서
안으로 안으로
다시 기어든다


스스로의 온도로 녹여 올리는 수액
그 달리는 수액으로
투명한 혈맥을 돌리며
가지 끝까지
매서운 겨울을 견디는
아, 완전한 이 단독 고독


하늘 어디메쯤 가서
이 고독은 풀릴까
바라던 휴식은 있을까
이 바람을 떠날 수 있을까


겨울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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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몰린 길목에서

-1978년을 보내며-



어느새, 모르게 떠나
일년 내내
사방으로 흩어져 쏘다니다가
12월 골목으로
갑작스레 몰려드는
시간들
세월들
상한 흔적들


잘 될 거라 믿고
잘 되길 바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신처럼
휙, 휙,떠나 버렸던
시간들
세월들
12월 좁은 골목에서
발을 전다.


아, 이 엄청난 거래
인간 쓰레기
시는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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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오욕의 우물을 피하며
바람으로 구름으로
생명을 깎으며
생명을 이어 온 나의 노래


오늘도 바람 속에서
구름 속에서
어느 누구 가슴에 머물다
사라질 것인가


아, 세월이여
덧없는 존재의 무궁한 허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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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절



해마다 꽃피는 계절이면
산에 들에 하늘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와 같이 집을 짓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어라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아물아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에 매달려


한동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구름 끝에
그 누구와 같이 둥지를 치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둥,둥, 떠가고 싶은 마음


아, 해마다 꽃돋는 나날이면
내 마음에 돋는 너의 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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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의 엽서



이렇게도 황홀한
바다노을을
혼자서 본다는 건
낭비입니다


너울너울 물결치며
출렁거리는 바다와
흐르는 구름과
하늘
타도록 빨간
저녁노을을
혼자서 본다는 건
벌이옵니다.


가물거리는 먼 수평선에
걸려 있는
어선 한 척
그것에서 인생을 느끼는
이 소식
아름다운 절경을
혼자서 느낀다는 건
실로 이것이 인생의 적막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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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내가 네게 가까이 하지 않는 까닭은
내겐 네게 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네게서 멀어져가는 까닭은
내가 감내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너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영 너를 잊고자 돌아서는 까닭은
말려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나를 건져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혼자 내가 떨어져 있는 까닭은
가진 것도 없고, 머물 곳도 없지만
한없이 둥둥
편안하게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오만한 너의 인간의 자리
허영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너의 거드름을 피하여
이만큼 떨어져 있는 자리
아,이 무구 무한한 하늘


내가 너를 멀리하고자 하는 까닭은
가진 것도, 머물 곳도 없어도
홀로 마냥 떠 있을 수 있는
넓은 그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그지없이 외롭다 해도
한없이 적막하다 해도
맥없이 넓은 이 자유


내가 영 너를 잊고자 하늘 까닭은
네게 줄 아무것도 내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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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가난은 언제나 슬픈 거
어디서나 애절한 거
누구에게나 가련한 거


그것은 불쌍하다는 말을 넘어서
그대로 마음에 젖어드는 까닭없는 눈물
찌릿 찌릿한 거
찌릿 찌릿한 거


모로코, 마라케시 근교
모래바람 부는 시골 장터에서
야윈 나귀를 팔고 있던
아람의 여인, 그 까만
굶주린 깊은 눈동자를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건 혁명 같은 거
사랑 같은 걸 넘은
혈육 같은 찐득 찐득한 거


그것을 더 넘은
비극의 미학 같은
사막의 사랑 같은
나의 눈물이 아니었던가


아, 그와도 같이
가난은 언제나 슬픈 거
어디서나 애절한 거
누구에게나 가련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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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평화로와진다
산란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불안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초조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나무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온 마음이 평화로와진다.


아, 그렇게
먼 너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평화로와진다
불안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초조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산란한 마음이 지속될 때도


온 세상이 불쾌한 공기로
나를 둘러쌀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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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다는 것은



맑아지는 감정의 물가에 손을 담그고
이슬이 사라지듯이
거치러운 내 감정이 내 속으로
깊이 사라지길 기다렸습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하고 헤어질 이 시간에.


해와 달이 돌다 밤이 내리면
목에 가을 옷을 말고
-이젠 서로 사랑만 가지곤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워서 못 일어서는 서로의 자리올시다.


슬픈 기억들에 젖는 사람들.


별 아래 밤이 내리고 네온이 내리고
사무쳐서 모이다 진 자리에 마음이올시다.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도 나하고 헤어질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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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투는 끝났다
이제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긴 그 어리석은 싸움에서
그 어리석음을 알고
서서히, 서서히, 돌아서는
이 허허로움


아, 얼마나 세상사 인간관계처럼
부끄러운 나날이었던가
실로 살려고 기를 쓰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애절한 일이 또 있으랴


가을이 접어들며 훤히 열리는
외길, 이 혼자
이제 전투는 끝났다.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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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너무나 먼 인생은
또한 지루할 거다
그 기다림이 오지 않는 인생은
더욱 더 지루할 거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인생을 살려면
항상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그 무엇을 스스로 찾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산다는 걸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모습을
항상 보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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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개울에 손을 담그며
지나는 마음으로 띄우는 말이


온 세상 인간의 개울


사랑아 마르지 말라
사랑아 머물지 말라
사랑아 상하지 말라
사랑아 어둡지 말라
사랑아 처지지 말라
사랑아 돌아서지 말라
사랑아 조바심치지 말라
사랑아 노쇠하지 말라


빛으로 어둠으로 빛으로
오로지 내일로 흐르는 시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려니


사랑아
저 하늘에서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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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의 위안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 날이 온다

그 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 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 날이 오면

잊어 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 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 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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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버릴 때처럼



꽃을 뻘릴 때처럼
잔인한 마음이 있으리


아직도 반은 살아 있는 꽃을
버릴 때처럼
쓰린 마음이 있으리


더우기 시들은 꽃을 버릴 때처럼
애처로운 마음이 또 있으리


한동안 같이 살던 것들
같이 지낸 것들
같이 있었던 것들을
버릴 때처럼
몰인정한 마음이 있으리


아, 그와도 같이
버림을 받을 때처럼
처참한 마음이 또 있으리

~~~~~~~~~~~~~~~~~~~~~~~~~~~~~

소망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나이다-시편119장


소망같이 피곤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어두운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쓸쓸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외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풀 곁에 흙이 있듯이
너와 나는 그렇게
있다 가자!


소망같이 외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쓸쓸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어두운 것이 어디 있으랴
소망같이 피곤한 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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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승리



고요한 승리를 걷우기 위하여
네 스스로의 깊은 곳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나지 않는
참호를 뚫어라, 그곳으로 잠적하여라
그곳에서 긴 일월을 견디어라


그것만이 고요한 자유를 얻는 전법이다.


약한 벌레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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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게



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죽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네게 죽음이 와서
이제 가자,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노력한 만큼 밝은 곳을로 갈 것이 아닌가


어둡고, 캄캄하고, 보이지 않는 우주
죽어서 혼자 가는 길


어떻게 떠날 것인가
때로,때때로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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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기를 세워라



청춘에 네 기를 세워라
청춘에 네 그 기를 지켜라
기 아래 네 그 청춘을 엮어라


누구보다 땀 많이 간직한 생명
누구보다 피 많인 간직한 생명
누구보다 눈물 많이 간직한 생명


청춘은 푸른 바다라 하더라
청춘은 푸른 산이라 하더라
청춘은 푸른 하늘이라 하더라


해는 항상 가슴에서 솟아오르고
즐거운 젊은 날
흘러내리는 날 날이 우릴 키운다


청춘에 네 기를 세워라
청춘에 네 그 기를 지켜라
기 아래 네 그 청춘을 엮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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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남.10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는 네 하늘이 되고 싶어라
울타리도, 칸막이도
경계도 없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있는 건 오로지
생명, 희열, 영광ㅇ, 무한, 사랑과 신뢰
끝없이 피어 만발한
빛의 물결
네 그 대륙이 되고 싶어라
피곤에 지친 영원한 네 휴식
그 푸른 풀과 바람
그 둥우리가 깃들어 있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

밤의 이야기 20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인ㅆ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엑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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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이유.12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
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어려운 말로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하세


너만이라든지
우리들만이라든지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하지 않기로 하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걸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을 하며
작별을 하며
사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

어느 해결




네가 나를 미워하는 있는 만큼
나는 네게 그만큼 떠나 있으리


네가 나를 싫어하고 있는 만큼
나는 네게 그만큼 떠나 있으리


네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만큼
나는 넨게 그만큼 오래 떨어져 있으리


네가 나를 그렇게 모르고 있는 만큼
나는 넨게 그만큼 명백하게 있으리


네가 나를 경멸하고 있는 만큼
나는 네게 그만큼 슬기롭게 있으리


네가 나를 그렇게 우스개로 여기고 있는 만큼
나는 네게 그만큼 의연하게 있으리


그리하여
네가 내게 받고 싶은 만큼
나는 네게 그만큼
텅 빈 하늘로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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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마음은 (병상에서)




지금 내 마음은

여름 홍수가
심하게 지나간 뒤에 남은

개울 물줄기가
말라 들어가는

한여름
하얀 대낮의 모래밭이옵니다

흘러 내려가다가
남은 작은 돌들이 드문드문

개울바닥에서
따갑게 햇볕에 타고 있는

돌밭에 끼어
멀리 불그스레이

개울 바람에 산들거리는
가냘픈 패랭이꽃
한 송이,
이걸 전생의 한 인연이라 할까

이 인연으로 하여 아직은 가득한

한여름
얀 대낮의 모래밭이옵니다

아, 아깝던 시간

그 시간이 쉴새없이
그대로 지나가도

이젠 붙들 수 없는
힘 빠진

한여름 늘어진
하얀 대낮의 모래밭이옵니다.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늘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슬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슬한 노래이었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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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

소라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도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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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짐을 덜어내며



아무런 욕심도 없는 사람은 가볍다
따라서
이승과 저승 사이에 걸려 있는
강물의 다리도 가볍게 건너리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 요즘 날마다 날마다 버리고 버리는
이 이승에서의 짐, 그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남길 짐 하나 가려둔다

아무도 모르는 무겁고도 가벼운
사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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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밀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 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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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이젠 먼 곳들이 그리워집니다
먼 곳에 있는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하늘 먼 별들이 정답듯이
먼 지구 끝에 매달려 있는 섬들이 정답듯이
먼 강가에 있는 당신이
아무런 까닭 없이 그리워집니다

철새들이 날아드는 그곳
그곳 강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당신이 그리운 것 없이 그리워집니다

먼먼 곳이 날로 그리워집니다
먼 하늘을 도는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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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해는 온종일 스스로의 열로
온 하늘을 피빛으로 물들여 놓고
스스로 그 속으로 스스로를 묻어간다

아, 외롭다는 건
노을처럼 황홀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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멉니다
아련하옵니다
불가사의 합니다
신비롭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사람이 사느 별이 있을까
하는 순간, 한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반짝,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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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사진첩을


묵은 사진첩을 들추고 있노라니
까닭 모르는 슬픔이
왈칵, 내 몸에 배어 옵니다.

기쁜 얼굴도 그렇고
웃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슬픈 얼굴은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기억 밖에 아주 묻혀 버린 얼굴들
기억 내에 아직 머물고 있는 얼굴들
어렴풋이 그때 그 시절, 생각나는 얼굴들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핑 돕니다

~~~~~~~~~~~~~~~~~~~~~~~~~~~~~~~~~~~~~~~~~~~~~~~~~~~~~~~~~~~~~~~~~~~~

남남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는 네 하늘이 되고 싶어라
울타리도,간막이도
경계도 없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있는 건 오로지
생명,희열,영광,무한,사랑과 신뢰
끝없이 피어 만발한
빛의 물결
네 그 대륙이 되고 싶어라
피곤에 지친 영원한 네 휴식
그 푸른 풀과 바람
그 둥우리가 깃들어 있는
넓은 넓은 네 대륙이 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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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번째 그대를 보았을땐
사랑하고 싶어졌어요.

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땐
남 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땐
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
미친듯이 바다기슭을 다름질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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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의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벗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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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세월이 잃고 간 빚처럼

낮하늘에 달이 한 조각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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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이유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 하지 맙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제나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읏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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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돌아간 흔적



세상에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읍니다.
작은 소망도 까닭도 없읍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읍니다


아세아 동방 양지바른 곳
경기도 안성 샘 맑은 산골


산나물 꿀벌레 새끼치는 자리에
태어
서울에 자라
당신을 만나 나 돌아가는 흔적
아름다움이여
두고 가는 것이여


먼 청동색 이끼 낀 인연의 줄기 줄기
당신을 찾어 세상 수만리 나 찾어 왔읍니다


까닭도 가난한 소망도 없읍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읍니다


이 세상은 사랑의 흔적
두고 가는 자리


사랑이 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수만리
소망도 까닭도 없이
그저 당신 곁에 잠시 나 있으려 나 찾어 왔읍니다.


詩集, 나는 내 어둠을

~~~~~~~~~~~~~~~~~~~~~~~~~~~~~~~~~~~~~~~~~~~~~~~~~~~

고독과 그리움


쓸쓸합니다.
쓸쓸하다 한들 당신은
너무나 먼 하늘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기쁨보다는 쓸쓸한 것이 더 많고,
즐거움보다는 외로운 것이 더 많고,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일 보다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행복한 일보다는
적적한 일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땐 한정없이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이러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당신이 그립습니다.
참아야 하겠지요.
견디어야 하겠지요.
참고 견디는 것이 인생의 길이겠지요

~~~~~~~~~~~~~~~~~~~~~~~~~~~~~~~~~~~~~~~~~

곁에 없어도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

늘, 혹은 때때로


늘, 혹은 때때로
생각 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 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 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 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덫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 이란다

~~~~~~~~~~~~~~~~~~~~~~~~~~~~~~

그럼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 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아, 이 공포,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머물고 있습니다.


* 조병화 시인님이 작고 하시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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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긴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

사랑의 노숙(露宿)


너는 내 사랑의 숙박이다
너는 내 슬프고 즐거운 작은 사랑의 숙박이다
우리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인생은 하루의 밤과 같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하루의 밤과 같은 밤에
우리는 사랑 포옹 결합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인간이다
너는 내 사랑의 유산이다
너는 내 온 존재의 기억이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인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야 하는 생명
너는 그대로 있어라
우리가 가고 내가 가고 사랑이 사라질지라도
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라
때오면 너도 또한 이 세상에 사랑을 남기고 가거라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과 숨가뿐 밤과 사랑을 남기고
가난히 자리를 떠나라
지금 이 순간과 같이 나와 같이
너는 이 짧은 사랑의 숙박이다
너는 내 짧은 사랑의 기억이다

~~~~~~~~~~~~~~~~~~~~~~~~~~~~~~~~~~~~~~~

회상


꽃 속에서 바스라지는 웃음 소리에
볼근 가슴을 비벼대던 아 젊은 날은
나와는 제일 먼 곳에서
사연 많은 긴긴 편지만 보내고 있어
편지 안에 흐트러진 긴 이야기엔
이렇다 할 아까운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건만
먼먼 호수가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낙엽을 말아 낙엽을 피워
보얀 연기 속에 누워야 한다
슬픔이 오고 가는 모퉁이에선
작별을 하여야 했다
긴 세월 속에 어린 나를 보내야 했다
아름다운 나의 목숨을 바칠 그러한 사람이 없어도
긴 세월 속에 나는 나를 묻어야 한다
오늘도 꽃 속에서 바스라지는 웃음 소리가 들려
볼근 가슴을 피어올리던
저 하늘가 가까이 또 하나
오지 못할 사연의 긴 편지가 떨어져 온다

~~~~~~~~~~~~~~~~~~~~~~~~~~~~~~~~~~~~~~~~~~~~

잎 떨어진 나무와 같이


멍하니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와 내가 유리되어
마냥 멍하니 노상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잎들이 사라진 나무 그대로
마냥 언제까지나 노상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눈에 내리어
고요한 당신의 마음과 같이 눈이 내리어
마냥 그대로 하얀 눈에 엎이고 싶은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미지근한 이 외로운 자리에서
깨지지 않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고
가랑잎이 내린 나무 그대로

멍하니 마냥
당신과 같이 고요한 눈에 덮히고 싶은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

나무의 철학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쉬임 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




내 손길이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 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

숨어서 우는 노래


내 영혼은
숨어서 우는 노래로 가득합니다.

내 사는
숨어서 우는 노래로 젖어 있습니다.

아, 그렇게
내 긴 생애는 숨어서 우는 노래입니다.

~~~~~~~~~~~~~~~~~~~~~~~~~~~~~~~~~~~~~~~~~

밤의 이야기 20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거지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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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개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한 뒤
지금까지 창작시집 52권, 시선집 28권, 시론집 5권,
화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등 160여권의 책을 냈다.
그의 시는 인간의 숙명적 허무와 고독을 쉽고도 아름다운 시어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의 시 '난(蘭)'이 지난 2000년 일본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렸으며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도 25권에 이른다.
화가로 활동하면서 20여 차례의 개인전과 초대전 등을 갖기도 했다.

문단에 기여한 공로로
아시아문학상(1957),
서울시 문화상(1981),
대한민국예술원상(1985),
3.1문화상(1990),
금관문화훈장(1996),
5.16민족상(1997) 등을 수상했다.
후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1991년 편운문학상을 제정,
지난해까지 36명의 시인, 평론가에게 시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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